Hwaj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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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Showcase
(10/10)

생각해보면 추리는 참으로 흥미로운 장르이다. 영화, 문학은 모두 수동적인 매체다. 따라서 해당 매체에서 추리물을 접할 때는 철저히 관찰자의 시점에서 주인공이 추리하는 과정을 목도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어렴풋이 추측해 볼 수야 있겠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추리한다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 직접 단서를 찾아 나서는 게 아니라 그저 창작자가 제시한 여러 실마리를 취합해 추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추리물이 감상자에게 선사하는 감흥의 초점은 논리적인 연역 과정을 거쳐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흩뿌려 놓은 파편적인 단서들 일명 떡밥을 어떻게 영리하고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엮어내 그럴듯한 결실을 빚어내는지에 가닿아 있다. 반면에 게임은 그 무엇보다도 능동적인 매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추리게임은 여타 매체에서의 수동적인 추리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무슨 단서를 보고 어떤 질문을 하여 볼지를 유저가 취사선택할 수는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능동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오브라 딘은 플레이어가 직접 모든 범죄 현장을 다각도에서 자신의 입맛대로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하여 진정한 의미의 추리를 가능케 하여 게임이라는 양식의 능동성에 걸맞은 추리 메커니즘을 지녀 신기원을 이룩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브라 딘은 예술적인 완성도를 자랑하는 추리게임이다. 탄탄한 각본, 특유의 경쾌한 리듬으로 추리에 동력을 더해주는 환상적인 사운드트랙, 시청각 모두를 아우르는 세심한 디테일, 정교한 인과관계에 그걸 돋보이도록 하는 역순행적 구조까지 논리력을 요하는 게임으로서 완벽하다. 3명의 행방을 정확히 적중할 때마다 확정해 주는데 여타 게임들처럼 되풀이되는 구조 앞에 점점 무뎌져서 나중에 감흥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가면 갈수록 맞힐 때의 감응이 고조된다는 점도 인상 깊다. Papers, Please 때도 그렇고 Lucas Pope는 반복의 미학에 통달한 것 같다.

이렇게 형식적으로도 비주얼적으로도 빼어난 스타일을 보고 있자니 Lucas Pope는 이 시대 게임계의 유일한 스타일리스트가 아닐까. 어떠한 야심도 보이지 않으려 하는 게임들이 만연하는 근래에 이런 작품은 6만 원을 준다고 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고 싶다
수많은 앨범을 돌렸고
수많은 영화를 봤으며
수많은 게임들을 플레이 해왔지만 이런 감흥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환상적인 사운드트랙만 듣고 있어도 물밀 듯이 밀려오는 감정의 해일이 나를 휩쓸고 지나간다
내가 죽기 전에 다시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기억의 파편들을 긁어모아 다시 한번 손에 잡아보려 해도 그저 무망한 투망질일 뿐,
연기 속을 헤집는 기분이다
정말 진심으로 바란다
Return of the Obra Dinn을 해보기 전으로 돌아가기를

P.S. For God's sake please let the fantastic OST available to download
Review Showcase
90 Hours played
(9/10)

Hypothesis: Outer Wilds gracefully defines what adventure is.

무지함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우아하고 우와!하는 여정

리뷰에 앞서 아우터 와일드는 아무런 정보 없이 플레이하였을 때 최대치의 감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나 역시 어떠한 사전 지식도 갖지 않은 채 게임을 플레이하였고 이렇게 하였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플레이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리뷰를 읽지 않는 것을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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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모닥불 근처에서 하늘을 보는 상태로 일어난다. 이상한 행성이 황도를 가르며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저곳은 어떤 곳일까 생각하는 찰나에 앞의 NPC가 눈에 들어온다. 말을 걸어보니 우주선의 발사 코드를 확보하라는 최소한의 목적을 건넨다. 그 목적을 달성하러 가는 길목에 배치된 몇몇 NPC들과 소소한 튜토리얼을 통해 세계관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과 여러 도구의 활용법을 터득하게 된다. 마침내 발사 코드를 얻은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우주선을 몰아 망망한 우주를 향해 나아간다. 여기엔 뭐가 있을까 하며 한창 탐사에 몰두하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무언가 폭발하는 것 같은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파란 형상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보여 당황한 나는 흡사 돌처럼 몸이 굳어 어떠한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이내 태풍과도 같은 환란에 휩쓸려 버린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나는 죽은 것인가? 무수한 의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화면엔 생전에 겪은 이미지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모닥불 근처에서 하늘을 보며 거친 호흡으로 깨어난다.

이것이 아우터 와일드의 도입부이다. 목전에 다다른 태양의 초신성 폭발, 죽은 이후에 모종의 이유로 계속 처음과 동시간대의 동일한 위치에서 전생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환생하는 플레이어. 이렇듯 파격적인 전제로 진행되는 본작은 초입뿐만 아니라 단연 작품 내내 플레이어로 하여금 감탄사를 남발하게 한다. 또한, 발사 코드를 얻어야 하는 초반의 목표를 제외하고는 플레이어에게 특별한 목적이 주어지지 않음에도 본작은 플레이어가 왜 태양이 폭발하는 것이지? 왜 주인공은 타임 루프에 갇힌 것이지? 와 같은 질문을 하도록 유발해 자의적으로 탐험하도록 유도한다.

광활한 우주를 추동하는 여러 법칙을 파헤치려 온갖 행성들을 탐사하게 되는데 행성들은 일체 외형적으로 개성이 넘치며 그 행성들을 관장하는 규칙들에 있어서도 특이성을 부여받아 탐험의 흥미를 증폭시킨다. 가령 Giant’s Deep 행성을 조사하는 도중 지반이 토네이도에 휩쓸려 대기권 밖으로 치솟았다가 원래 자리로 강하한다던가 Brittle’s Hollow를 사찰하는 도중 실수로 행성의 코어로 낙하했더니 화이트홀로 나오게 되는 등, 수색 도중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였을 때의 희열은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이렇듯 세계의 작동원리를 통해 탐험의 설렘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본작은 실로 우아하고 우와! 하다.

한 행성의 단서가 다른 행성의 장소에 접근을 가능케 하는 순환적인 탐험 구조는 메트로베니아 장르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여타 메트로베니아 게임들이 능력을 얻기 전까지는 정말 물리적으로 특정 구역에 도달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본작은 접근 방법만 깨우치면 처음부터 해당 지역에 갈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장소를 가지 못한다는 것은 철저히 플레이어의 ‘무지함’ 때문이며 이 `무지함`은 본작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경험을 통해 습득한 단서들로 추리를 한다는 점은 분명 ‘오브라 딘 호의 귀환’을 닮아있다. 두 작품 모두 정보의 홍수 속에서 플레이어가 방향감각을 상실하지 않도록 정리해주는 일지 시스템이 존재하며 아우터 와일드는 그에 더해서 해당 루프에 일어난 일들을 되새겨주는 주마등 시스템이 존재한다. 또 두 작품 모두 과거에 발생한 일을 텍스트의 형태로도 전시한다. 본작에서는 가지를 치며 뻗어 나가는 Nomai 족의 기록을 번역하게 된다. 이는 동일한 주제를 두고 그들이 어떻게 다른 관점으로 해석했는지 시사한다. 허나 본작의 텍스트는 필요 이상으로 양이 많기도 하고 제공하는 단서가 너무 직접적이라 오히려 추리하는 재미를 반감시킨다. 게임이란 결국 가장 직접적인 형태의 간접체험이다. 그렇기에 플레이어한테 적나라하게 실마리를 보여주는 것과 플레이어가 직접 단서를 찾는 것의 감흥의 차이는 막대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플레이어가 태양이 폭발한다는 것을 읽고 그 현상을 맞이하는 것과 플레이를 하다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것과는 감흥의 차이가 엄청날 것이다. 또한, 과도한 양의 텍스트는 문헌 속의 일상적인 순간들이 따듯하게 다가오기보다는 쓸데없는 정보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고취시킨다. 기록들이 제시하는 여러 관점도 사실 플레이어가 직접 여러 각도에서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제시해주는 지극히 수동적인 관점이라 흥미롭지 못하다. 비록 모든 규칙이 하나의 퍼즐 조각이기 때문에 오브라 딘과는 달리 실시간으로 시간이 흐르는 본작의 특성상 플레이어가 게임의 로직을 지나칠 가능성이 있기에 굳이 부연설명을 덧붙인 것일 테지만 본작의 정수는 무지함의 껍질을 플레이어가 직접 벗겨내는 데 있다. 그렇기에 글의 서두에 언급하였듯이 아무런 정보 없이 최대한의 무지함을 갖추어야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본작이 완벽하게는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따라서 추리라는 영역에서는 오브라 딘이 월등히 앞서있으며 더 나아가 오브라 딘은 과거를 박제해 무엇보다 정적인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활력이 넘치는 데 반해 오히려 동적인 게임인 아우터 와일드가 주변 환경에 생동감이 너무 부족해 지루해진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예견된 태양의 초신성 폭발은 곧 필연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다크소울 시리즈가 치밀한 레벨디자인으로 필연적인 죽음을 얘기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두 작품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다크소울 시리즈에서의 죽음은 대체로 플레이어의 기량에서 비롯된다. 몹의 패턴을, 보스의 패턴은 이미 다 알고 있지만, 알면서도 피하지 못한 나. 그리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다크소울의 죽음이라면 아우터 와일드의 죽음은 대게 ‘무지함’에서 기인한다. 미지의 세계에서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다 죽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의 죽음이 절치부심하여 난관을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사명을 부여한다면 후자의 죽음은 깨달음을 얻는 유레카의 순간이 된다. 그렇기에 본작에서는 절명의 순간이 유쾌하게 다가올 때가 허다하다.

본작의 타임 루프 시스템을 사실상 세이브포인트가 고정된 게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통상적인 게임에서는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한다면 세이브 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방금 그 실패한 경험은 분명히 있었던 일이지만 캐릭터에게는 없던 일로 치부되고 플레이어만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플레이어와 캐릭터 간의 정보의 격차가 괴리감을 자아내지만, 본작은 캐릭터에게도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는 주마등 시스템으로 그 간극을 최소화하여 플레이어의 몰입에 일조한다.

플레이어는 결국 무지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어 우주 깊숙한 곳의 비밀에 도달한다. 마치 모든 행성이 퍼즐 조각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해주듯이 각 행성의 대표성을 지닌 악기들을 하나씩 호명하여 마침내 하모니를 이루는 시퀀스에서는 전율이 맴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플레이어를 맞이하는 건 바로 우주의 탄생이다. 우주의 종말에 이은 우주의 탄생. 하나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본작의 내러티브는 (비록 클리셰적인 면모가 있기는 해도) 본작의 타임 루프 시스템과 닮아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마지막으로, 본작은 사운드트랙 마저도 걸출하다. 우주를 묘사할 때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한스짐머풍의 웅장한 스코어와는 정반대의 스펙트럼에 있지만, 미니멀한 구성에 감미로운 선율은 아직도 나를 자극한다. 자그마한 밴조 하나에 그 광활한 우주를 담아내어 도입부만 들어도 다시 망망한 우주를 항해하고 싶어진다.
2010s Game Top 10
1. Return of the Obra Dinn

2. Dark Souls 1,3

3. Undertale

4. Zelda: Breath of the Wild

5. Portal 2

6. Bioshock: Infinite

7. Sekiro

8. Outer Wilds

9. Witcher 3

10. Papers, Please / DOOM(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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